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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과 다른 천국지옥 체험기IMMANUEL 2012. 5. 4. 12:56
성경과 다른 천국지옥 체험기 2012년 04월 01일 (일) 교회와 신앙 webmaster@amennews.com 대림감리교회 이인규 권사
한국장로교총연합회 협력상담위원
무엇이든지물어보세요(http://cafe.naver.com/anyquestion.cafe) 카페 운영자
사람이 죽지 않고 천국과 지옥에 다녀올 수가 있을까? 한마디로 공상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들이 지금 기독교에서 대유행을 하고 있다. 너도 나도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고 간증을 하기에 이르렀고, 기독교서점에까지 이러한 책들이 넘쳐나고 있다. 게다가 이런 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가장 인기있는 강사로 초청되고 있고, 이러한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서 한국의 기독교는 극단적인 기복신앙으로 변하고 있으며, 무속화되고 있고, 개인의 간증이나 혹은 예언과 직통 계시 등에 의존하는 이상한 형태로 변하고 있음을 심히 우려하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이런 성향은 간혹 있었지만, 신사도운동이 도입된 후에 이런 체험적인 주장들이 대거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하지면, 기독교가 비성경, 비신학적인 형태로 탈선하고 있는 것이다.
천국·지옥에 대한 간증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정말로 사실인지 아닌지는 두번째 문제이고, 그 누구의 체험적인 간증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강조되어질 이유가 없다. 그 이유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충분한 지식을 받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느 개인의 천국지옥 간증이 우리의 객관적인 신앙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객관적인 신앙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성경으로는 구원을 받기에 부족하거나, 어느 개인에게 보충적으로 천국지옥 간증을 들어야만 구원을 받는가?
게다가 매우 유치하고, 저차원적이며, 비성경적이며 비신학적인 개인의 천국 지옥 간증을 들어야할 어떤 이유가 있는가? 최근에 K집사의 주장과 같이 목사의 말에 절대 순종하고 십일조를 잘 내면 천국에 가는가? 과연 천국이 보상적이고, 조건적이며, 행위적이며, 정말로 교회에서 헌금이나 혹은 봉사에 따라 차등이 주어지는가? K집사의 유치한 간증에는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의 복음이 실종되어 있다.
천국에서 보석이 박힌 저택에 산다는 간증이나, 혹은 행위에 따라 천국 저택의 평수가 넓어진다는 주장, 물질창고에 돈이 가득 쌓여 있다는 이런 엉터리 간증을 듣기 위해 목사들은 K집사를 초청하여 아까운 헌금으로 강사료를 지불하면서 간증을 듣는가? 그래야만 교회에 십일조와 헌금이 많아지고, 목사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인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천국에서 몇 평의 저택에서 살며, 어떤 보석이 박혀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느냐는 문제이다. 성경은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으며, 그 기준은 오직 성경이 된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 이상이 무엇이 중요한가? 다시 말하여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의 복음이 실종된 체험적 간증은 당연히 거부되어야만 하며, 이런 엉터리 간증을 듣기 위하여 그런 유치한 강사들이 초청되는 것은 그 교회 목회자들의 책임이라고 본다.
천국지옥 간증을 하는 사람들이 항상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고린도후서 12장 2-6절이다. 과연 고후 12장의 바울이 낙원을 다녀왔다는 것이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사건인지 성경을 살펴보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고후 12:2~6).
바울은 낙원에 다녀온 것을 자신의 체험이 아니라 제 삼자의 입장으로 말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는 6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지나치게 생각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 본문을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든 이유는 워낙 요즈음 천국과 지옥에 갔다 왔다는 사람들과 바울과 다른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간증을 듣거나 그 책을 읽어보면 바울과 많은 차이점이 보인다.
첫째,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각할 것을 염려하여 제 삼자의 입장으로 글을 기록하는 반면에, 요즈음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는 사람은 오히려 자랑스럽게 자기 자신의 체험을 말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천국과 지옥을 다녀왔다는 간증을 하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비성경적이며 자의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경적인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의 구원관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행위구원을 강조하고 있으며, 천국에서도 부를 누린다는 매우 이상한 주장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특수한 경우를 보편화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기워졌다(창 6:24, 히 11:5)는 구절을 인용한다. 이러한 특수한 경우가 다른 사람에게도 보편적으로 일어났는가? 예를 들면, 엘리야의 경우(왕하 2:11)와 같이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하늘로 승천한 경우가 다른 사람에게도 보편적으로 일어났는가? 특수한 경우를 보편화 한다면 예수님과 같이 물 위를 걸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에녹이 죽지 않고 하늘로 옮기워졌다는 것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바울은 자신이 낙원을 간 것이 몸 안인지 몸 밖인지를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천국간증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영혼이 몸에서 이탈되어 영혼만이 갔다고 말한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왜 몸 밖에서 유체이탈되었다고 단정하는가? 그렇다면 왜 바울은 몸 안인지 몸 밖인지 몰랐다고 말할까? 성경학자들은 이러한 바울의 체험을 그가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난 경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고후 11장23-25절에서 그는 거의 죽을 뻔했던 많은 체험들을 말하며, 행 14:19에서 바울은 돌에 맞아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으로 내친 적도 있었다.그런데 요즈음 입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영혼이 몸에서 이탈되어 갔다 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큰믿음교회(변승우 목사)와 주님의교회(김용두 목사) 일부 신도들, 혹은 구순연 집사, 천국간증에 대한 책을 쓴 토마스주남이 해당된다. 이 중에는 수십번을 습관처럼 아주 쉽게 천국을 갔다 왔다는 사람도 있다. 신사도운동을 하는 미국의 일부 목사 중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원하기만 한다면 천국과 지옥을 가서 예수를 만난다는 사람도 있다.
넷째, 바울은 그러한 체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말도록 경고를 받았다고 말한다.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특히 KJV영어성경과 NIV영어성경이 모두 그러한 번역을 하고 있다. 바울은 왜 이야기를 하지 말도록 들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모두 성경의 내용과 달리 자유롭게 말을 하고 있을까?
[표준새번역] 이 사람은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현대인의성경] 나는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고 또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되는 말을 들었습니다.
[KJV] How that he was caught up into paradise, and heard unspeakable words, which it is not lawful for a man to utter.
[NIV]was caught up to paradise. He heard inexpressible things, things that man is not permitted to tell.
다섯째, 물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경우가 지금도 간혹 있다. 기독교뿐 아니라 타종교, 혹은 무신론자도 그러한 체험을 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그러한 현상에 대해서 의학적인 견해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 대해서, 가사상태라고 말하기도 하며,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만일의 가능성을 위하여 죽은 사람을 곧 매장하거나 화장을 하지 않고, 삼일장을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실제로 죽은 지 며칠만에 다시 살아난 사람은 드물게 있지만, 죽은 지 일주일 이상된 사람이 살아난 적은 없다.
타종교와 불신자들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그러한 입신은 기독교만의 상황이 아니라고 말해야만 하지 않는가? 심장이 멈춘 사람의 경우, 의학적으로는 죽음의 상태이지만, 인공호흡이나 심장에 전기적인 충격을 줌으로서 소생시키는 방법도 있다. 분명한 것은 죽은 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경우는 한번도 없다. 어쨌든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꿈을 꾸었다는 경험담을 말하기도 하는데, 그 체험이 모두 다르며, 특히 자신이 평소 갖고 있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불교인도 죽었다가 살아난 체험을 말하고, 타종교인 심지어 이단교회도 죽었다가 살아난 체험을 말하므로 표준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음부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욥 7:9-10).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여섯째,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은 곧 죽음을 말한다. 성경은 “영혼없는 몸은 죽은 것”(약 2:26)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육신은 땅으로 돌아가지만, 신(spirit)은 육신과 분리되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게 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 12:7).
스데반은 죽음을 당하기 직전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 7:59)라고 부르짖었으며,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모두 죽음의 상태가 영(spirit) 혹은 혼(soul)이 사후에 육체로부터 분리되어지는 것을 뜻한다. 야이로 회당장의 딸이 죽었을 때에 예수님이 “일어나라”고 하자 “그 영(sprit)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눅 8:55)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나니아와 그 아내가 사도들의 발 앞에 팔았던 밭의 값을 속이었을 때에도 "혼(soul)이 떠나갔다"(행5:5. 5:10)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또한 부자의 죽음에 대해서 “네 영혼을 도로 찾는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눅 12:20).
다시 말하여 영혼이 몸을 빠져 나갔다고 하면 그 몸은 죽은 시체가 되며, 성경은 단 한번도 사람이 죽지 않고 영혼과 몸이 분리된 경우를 언급하지 않는다. 바울의 경우도 그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성경에서 사도바울도 몸 밖으로 떠나는 것을 죽음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8-10).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 1:22~24).
요즈음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간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특히 신사도운동과 관련된 목사들이 그러한 주장을 많이 하는데,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책을 쓴 토마스 주남이 대표적으로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한때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했던 문제의 사람들이 다시 천국과 지옥 간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자기들 임의대로 천국을 황당하게 묘사한다거나,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거나,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체험이 어떤 목적을 가진 거짓말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고, 만일 그러한 체험이 가사상태에서 느끼는 꿈과 같은 환상이라면 우리는 개인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천국체험으로 받아들이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천국 지옥 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의 간증이 성경적이라면, 우리는 개인적인 간증이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충분이 인지할 수 있으므로 그들을 초청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또 그들의 간증이 비성경적이라면 그들을 불러 그 간증을 들을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요즘 신문에는 통일교 측에서 변역했다는 스베덴보리의 천국체험기를 광고한다. 그책의 내용은 성도들이 모르고 읽다가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알았지만 아직도 그것을 선호하는 본별력이 없는 목회자들이 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개인의 비성경적이며 주관적인 간증을 통하여 천국과 지옥을 믿을 이유가 없다. 더욱이 무속적이고 미신적인 속설에 미혹되지 말자. 성경은 우리에게 능히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는 책이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출처 : ╋예수가좋다오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메모 :'IMMANU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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