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버들피리 불기
    Folk(tradition) Play 2012. 7. 15. 00:01

     

    버들피리 불기



                                                                                                    이상호/사)놀이하는사람들 대표



    <청장관전서> 제2권에는 『책에 미친 바보』(미다스북스, 2004)의 이덕무가 어느 봄날 아이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고 7언시를 지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인용) 당시에도 봄을 상징하는 놀이가 버들피리였나 봅니다.
    봄날에 아이들의 노니는 모습을 보고

    金氏東園白土墻 김 씨네 동산 흰 흙담에 甲桃乙杏倂成行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나란히 줄을 이뤘는데 柳皮?栗河豚鼓 버들피리에 복어 껍질 북으로 聯臂小兒獵蝶壯 어깨를 연이은 어린아이들이 나비 잡기에 바쁘네
    (柳皮?:류피필-버드나무 껍질로 만든 피리로 버들피리를 뜻함)

    날이 풀리고 나무에 물이 오르면 우리나라 구석구석이 소란해집니다. 강가나 개울가에서 흔히 자라는 버드나무 가지를 꺽어서 아이들이 불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일제 시대에 무라야마 지준이 엮은 『조선의 향토오락』(집문당, 1992)에 의하면 전국 132곳에서 버들피리가 조사되고 있으니 남녘에서 북녘 끝까지 봄을 대표하는 놀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주로 아이들(127곳)이 불었지만 경기도 수원에서는 젊은 부인, 전라남도 구례를 비롯하여 함안, 경기도 양주, 포천 등지에서는 어른들이, 경기도 파주에서는 청소년도 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버들피리는 물이 많은 냇가나 강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버드나무를 이용해서 만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호드기, 삘기 불기, 호떼기, 횃때기, 홀똑이 라고도 합니다.
    버들피리를 만들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가지를 고르는 것입니다. 일찍 눈이 나온 것은 비틀면 그곳에 구멍이 생기거나 찢어지기 때문에 나무 중심의 안쪽 가지가 좋습니다.
    가지를 골라 꺽은 다음에 빨래 짜듯이 잡고 비틉니다. 어느 순간 속대(나무)와 껍질이 겉돌게 되는데 이는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속대를 이로 물고 껍질이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빼냅니다.
    벗긴 부분을 잘라 버리고 적당한 길이로 자르는데 길면 탁한 저음이 나고 짧으면 높고 맑은 소리가 납니다. 껍질의 한 쪽 끝 부분의 겉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껍질이 남는데 이 부분을 손이나 입으로 납작하게 만들면 버들피리가 완성됩니다.
    보여주면 쉬운데 이를 말로 설명하려니 만만치 않습니다. 시골이 고향인 어른들은 대부분 해 보았기에 도움을 받으면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이제 떨림을 이용하여 바람을 밀어 넣습니다. 처음에는 소리가 잘 나지 않는데 입에 대고 몇 번 불어 따뜻한 습기가 들어가면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굵은 것은 중간에 구멍을 내서 피리처럼 구멍을 막았다 놓았다하면서 연주를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끼리 모여서 만든 다음 숨을 모았다가 누가 오래 부는가를 겨루기도 합니다.
    칼이나 낫으로 잘라서 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 소리가 잘 나지 않아 새로 만들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노래가 전해져 오는데 대구지방에서 불렀던 것을 소개합니다.

    입으로 불며 라레라레라레라
    철쭉 꽃 꺾어와 금강산을 만들고
    소꿉장난 재미있다 오색나비 춤추고
    새들이 지저귀는 가-운-데서
    케키요 케키요 호키요 재미있구나(『조선의 향토오락』에서)

    같은 원리로 풀피리나 보리피리, 민들레를 이용해서 피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함경북도 북청의 한 마을에서는 주로 민들레 꽃 대로 만들어 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 해 보니 소리가 버들피리만은 못하고 불고 난 다음 쓴 맛이 오래 남습니다. 그러나 버들피리는 봄철에만 할 수 있는데 민들레는 늦은 봄부터 가을까지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도시에 살면 버드나무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때 맞춰 구해서 만들었는데 소리가 너무 예뻐 집에 가져가게 됩니다. 그러나 집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이는 그 안이 말라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때 물에 담궈 놓았다가 불면 다시 소리가 나는데 처음 만들었을 때보다 신통찮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작은 생수통에 물을 조금 담아서 그 안에 밀봉시켜 두면 적당한 습기를 유지시킬 수 있으므로 여러 번 불어도 처음과 같은 좋은 소리가 납니다.

    버들피리 하면 옛 생각이 납니다. 소리가 주는 묘한 추억입니다. 김용택 시인은 『디새집』(2001. 여름호)이라는 잡지에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 추억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떤 누님이 부는 피리 소리는 구슬프고 쓸쓸했고, 어떤 누님이 부는 피리 소리는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로 들렸다. 누님들이 강가에서 버들가지를 꺾어 그렇게 자기의 마음을 닮은 소리로 버들피리를 불면 강 이쪽에서는 총각들이 또 나무를 하며 버들피리를 불었다. ~ 중략~ 어떤 누님과 어떤 총각이 그 소리를 주고 받는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았다. 나무를 찍으며 부는 총각들의 버들피리 소리와 봄이 오는 밭에 돌아 앉아 부는 누님들의 버들피리 소리는 산을 깨우고 물을 깨우고 얼어붙었던 세상을 깨우는 소리였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기억은 떠올리면 되는 것이지만 추억은 어떤 것이 나를 그때로 데려 가는 것입니다. 탁현민(공연 기획자)은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기억을 추억으로 바꾸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해 보았다. 생생한, 너무도 분명해서 펄떡펄떡 날것에 가까운 기억을, 시간에 재워 추억으로 만드는 것~”(시사주간지 <시사 IN> 217호)

    몇 해 전 아마 4월 중순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 종각역에서 전철을 타러 가는데 웬 노인이 양동이에 물을 조금 담고 버드나무 가지를 물에 반쯤 담아 죽 늘어놓고 직접 버들피리 만들어 팔고 있었습니다. 크게 소리 내지 못하고 삐삐하고 불면서 직접 만드는데 사람들이 그 소리에 모여들었다가 가버렸습니다. 자리를 뜨지 못하고 지켜보았는데 의외로 사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와 같이 나이가 40대 중반이고 아마 시골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이겠지요. 버들피리를 사는 것이 아니라 아득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사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시골이 고향인 사람은 살만하지요. 추억을 곶감처럼 조금씩 빼먹고 살아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아이들은 어떤 추억으로 봄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매년 봄이 찾아 와도 계절의 변화 정도로 여길 수 밖에 없다면 그 마음에 어찌 파릇한 새싹이 돋겠습니까?
    버드나무 가지를 고르고, 다듬고, 만들고 드디어 불었을 때 몸으로 느끼는 봄의 달콤함이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정말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어른들의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람이 하루하루 다르고 화단에 새로운 생명이 얼굴을 내밀 때 망설이지 말고 주변의 강가로 나가보세요. 물이 있으면 버드나무가 있고 버드나무가 있으면 피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잊지 말 것은 연필 깎는 칼을 꼭 챙겨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