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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평신도목회 시대이다.
새로운 종교개혁
최근 부각되고 있는 평신도목회 철학은 21세기의 "새로운 종교개혁"으로 불리고 있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돌려주었고 평신도의 "만인제사장" 의식을 찾아주었다. 21세기의 새 종교개혁에서는 평신도들에게 목회적 사역을 돌려주고 있다. 이 새로운 목회철학은 칼빈주의에서 꽃을 피웠고 도이베르와 아브라함 카이퍼에게서 문화적 사명이란 칼빈의 신학적 개념을 모든 신자들의 모든 영역이 바로 영적인 사역이란 폭넓은 해석을 함으로서 평신도 사역에 큰 공헌을 했다. 웨슬리의 영적, 사회적 갱신운동은 조직적인 소그룹 평신도목회운동으로 감리교의 창설과 강력한 확장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20세기 중반기부터 평신도목회 철학은 더 구체화되기 시작하며 새 시대를 열었다. 헨드릭 크레이머의 "평신도신학," 랄프 몰톤의 "동결된 평신도," 폴 스티븐슨의 "평신도해방," 멜빈 스타인브론의 "평신도목회," 데일 갤러웨이의 "평신도목회자와 소그룹의 결합," 릭 워렌의 "평신도사역자"와 조용기의 "셀그룹사역," 옥한음의 "평신도를 깨운다," 김상복의 평신도목회연구원, 싱가폴의 로렌스 퀑, 칼 죠지의 "메타교회," 독일의 수바르츠, 중국의 가정교회 등을 통하여 평신도 목회 시대가 강하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특히 목회자들 사이에서 다소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하나 그레그 옥든의 "새종교개혁"에서 분명히 말한 것처럼 평신도목회는 성령께서 제시해 주시는 21세기의 목회철학임에는 틀림없다. 16세기 종교개혁에서는 교회가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돌려주었으나 21세기 새 종교 개혁에서는 평신도들에게 목회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적 개념
평신도목회 철학은 평신도목회를 주장하는 분들이 개인적으로 만들어 낸 개념이 아니고 20세기 후반에 와서 새롭게 발견 되었을 따름이다. 교회사에서 그랬던 것과 같이 성령께서 시대마다 깨닫게 하시는 중요한 진리들이 있다. 초대교부 시대에는 기독론, 종교개혁 시대에는 구원론과 교회론, 웨슬리 시대에는 전도와 선교, 20세기에는 성서론, 성령론, 종말론, 그리고 평신도 목회론이 새롭게 솟아올랐다. 평신도목회 개념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모세와 예수님과 바울과 베드로의 목회철학이었다. 모든 백성들을 영적으로 돌보기 위해 모세에게 제안한 이드로의 원리(출 18장)가 사역의 효과적인 분할을 이미 보여주었다. 누구든지 한 사람이 2명 내지 10명 이상을 돌보지 않도록 이스라엘 전체를 재조직했다.
장로를 70명 뽑아 천부장 10명씩 돌보고, 천부장은 백부장 10명, 백부장은 50부장 2명, 50부장은 10부장 5명, 10부장은 10명씩을 돌봄으로서 2백만이 넘는 백성을 완전히 소그룹화해서 돌보았다. 또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 주고 가르치라"(마 28:19-21)고 명하셨던 바로 그 예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요 21:15-17)는 목양의 사명을 주셨다. 바울은 목사인 선생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the work of ministry)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라는 구절에서 평신도목회를 분명히 가르치셨다. 단순한 "봉사"가 아니고 "목회의 사역"이라는 사실을 지적해주었다. 베드로도 평신도를 "왕과 같은 제사장"(벧전 5:1-4)이라는 사역적 정체성을 세워주었다. 사장되어 있는 평신도를 "병신도," "잠자고 있는 평신도," "동결된 평신도"라 불리기도 하고 때로는 "숨겨져 있는 보화"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말해지기도 한다. 엄청난 교회의 자원이 "봉사"라는 전통적 개념에 발목을 잡혀 평신도들이 받은 목회적 은사를 사장하고 목회적 가능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교회와 평신도들의 현실이다. 목회자들 사이에도 아직 이해를 못해 평신도목회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동결된 평신도
교회를 거의 국교화시킨 콘스탄틴 대제 이후 성직자는 정치적, 경제적, 영적 권위와 지위가 보장되고 귀족화되어 암흑시대 동안 목회자가 지상의 그리스도의 대리인(the vicar of Christ)이 되었고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를 엄격하게 구별하여 두 계급으로 나누어 놓았고 오늘까지도 구교에서는 이 신학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왕들이 교황의 축복을 받기 위해 눈 속에서 맨발로 걸어와 무릎을 꿇고 교황이 나와 머리에 손을 얹어주기를 애원하는 일까지도 교회의 암흑시대에 있지 않았던가? 전통적 교회에서는 목회가 목회자의 전유물이어서 평신도들은 목회자를 도우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신도목회 개념에서는 목회는 목회자의 전유물이 아니고 모든 신자의 공유물이라는 것이다. 목회의 은사도 전임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 공히 주어져 은사를 받은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 은사를 반드시 개발하여 함께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도 속히 평신도목회 개념을 깨닫고 동결된 평신도, 잠자는 평신도, 묶여있는 평신도, 숨겨진 보화를 속히 녹이고 깨우고 해방시키고 발굴해서 전임 목회자와 평신도 목회자가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저 잘 세우는 21세기가 되어야 한다.
평신도목회의 필요성
시편 저자는 이렇게 한탄 한 적이 있다. "내 우편을 살펴보니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시편 142:4). 많은 성도들의 음성이다. "내 양을 돌보아 달라"고 우리에게 부탁하셨는데 전임 목회자들만의 노력으로는 성도들을 다 돌 볼 수가 없다. 누군가 소외되는 분들이 있다. 평신도들이 목회적 사역을 하면 돌봄 그룹은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섬길 수 있는 성도들은 얼마든지 있다. 평목이 매일 자기가 맡은 가족의 이름을 불러가며 중보기도하는 사역 하나만해도 엄청나게 중요한 목회입니다. 모두가 서로의 기도와 사랑과 관심과 돌봄이 필요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통적 목회는 많은 사람들을 사각지대에 방치해 두는 목회요 방치해 둘 수밖에 없는 제도입니다. 21세기에는 새로운 평신도목회의 패러다임으로 속히 전환해야 합니다. 지금은 신학교에서, 교회에서, 선교지에서 평신도목회가 점차 펼쳐지고 있습니다. 속히 깨달아 나의 사역이 무엇인지를 찾아 모두 함께 주님의 양들을 돌보며 주님의 원하시는 사역들을 해야 합니다.
패러다임의 전환
평신도목회운동에는 목회자들과 평신도들 사이에서 상당한 생각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종래의 사고방식은 21세기적 새로운 사고방식을 변화되어야 한다. 새로운 사고의 변화 없이는 평신도목회를 불가능하다. 목회적 사역은 목사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목회자와 모든 성도들의 공유물임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사고 : 목사는 목회자의 소명을 받았다.
새로운 사고 : 모든 평신도도 목회자의 소명을 받는다.
전통적 사고 : 목회는 목사의 사역인데 평신도들이 돕는다.
새로운 사고 : 목회는 모든 평신도들의 사역인데 목사가 돕는다.
전통적 사고 : 평신도는 목사가 받은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목사를 돕는다.
새로운 사고 : 목사는 평신도가 받은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평신도를 돕는다.
전통적 사고: 목사는 교회의 목회를 하는데 필요한 모든 은사를 혼자 다 갖고 있다.
새로운 사고: 모든 평신도는 교회의 목회를 하는데 필요한 은사들을 다 갖고 있다.
전통적 사고 : 목사는 목회의 짐을 홀로 지고 성도들은 목사를 기도로 돕는다.
새로운 사고 : 목사와 평신도가 목회의 짐을 함께 지고 그들은 서로를 기도로 돕는다.
전통적 사고 : 목사는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목회의 책임을 진다.
새로운 사고 : 모든 성도도 목회자로서 하나님과 전임목회 앞에서 목회의 책임을 진다.
전통적 사고 : 신학교는 소명을 받은 사람들을 목회자가 되도록 교육하고 훈련한다.
새로운 사고 : 교회는 소명을 받은 평신도들을 목회자가 되도록 교육하고 훈련한다.
균형 있는 3S 신앙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평신도들에게는 다음의 세 가지가 균형 있게 개발되어 있다. 그 신앙을 3S로 표현할 수 있다.
구원(Salvation),
성화(Sanctification),
섬김(Service)으로 요약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은 이 세 가지 주제 하에 조직될 수 있다. 로마서의 내용도 바로 이 세 가지 포함된다. 죄(롬 1:1-3:20), 구원(롬 1:1-5:21), 성화(롬 6:1-8:39), 선택(롬 9:1-11:36), 섬김(12:1-16:27). 첫 부분의 죄는 구원을 위한 원인을 제공해 주고 있고 네 번째 부분인 선택은 이스라엘에 대한 절대자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두 번째 부분이 개인적 구원이라면 네 번째 부분은 유대 민족의 구원에 초점이 있다. 결국 구원, 성화, 섬김이 로마서의 주제요 기독교 신앙의 간략한 요약이다. 이 세 가지를 다 체험하고 있는 신앙인은 잘 개발된 균형 있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로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날마다 성장하고 성숙하고 변화시키시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들을 맺고 살면서 성령께서 각자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것이 모든 신앙인들의 축복이다.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거나 개발되지 않으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평신도 목회자, 전도자, 교사, 상담자, 선교사, 중보기도자, 가정사역자, 직장사역자, 학원사역자 외에도 얼마든지 각자가 받은 영적인 은사를 개발하여 얼마든지 섬길 수 있다. 평신도의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섬기는 영적 사역이 포함되어야 만이 온전한 신앙이요 의미 있고 만족한 신앙생활이 될 수 있다. 평신도들이 균형 있는 3S신앙을 개발하여 때 행복한 신앙, 생활, 사역을 누릴 때만이 행복한 평신도들이 모인 교회는 행복한 교회가 될 것이다.
이제는 평신도가 교회 개척할 때가 되었다
전세계 60억 인구 중 기독교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약 20억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통계에는 가톨릭(11억), 정교회(2.2억), 유색 인종 토착 기독교(3.5억), 성공회(0.75억) 그리고 기독교를 빗대는 모든 이단들까지도 포함된다. 이중 개신교 인구는 오직 3억 2천만 명에 불과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복음에서 소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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