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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희지
    CALLIGRAPHY,ORIENTAL 2013. 1. 15. 21:15


    王羲之의 글씨

    중국 저장성 사오싱(紹興) 교외에 난정(蘭亭)이라는 유적이 있다.
    왕희지(王羲之)가 서예사 최고 걸작 '난정서(序)'를 쓴 곳이다.
    기념관에는 중국 역대 내로라하는 글씨 대가들이 왕희지를
    흉내 내 쓴 제2, 제3의 '난정서'들이 수십 점 걸려 있다.
    안진경 우세남 소동파 구양순 조맹부 정판교….
    |그러나 정작 왕희지가 쓴 '난정서'는 없다.


    모작 난정서


    서기 354년, 초봄
    왕희지와 그의 세 아들 그리고 사돈인 서안을 비롯한 친구 친지 42명이
    지금의 절강성 소흥에 있는 회계산(會稽山) 양란저(陽蘭渚)의 정자에 모여서
    '불계의 예'(봄맞이 목욕행사)을 거행하고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는데,
    술을 마시는 곳이 굽이쳐 도는 물가인지라
     

    방사우 준비하고...
    물에 술잔을 띄우는 놀이를 하면서
    즉흥시도 짓고 벌주도 마셔가면서 놀았던 바...
    막판에 종이들을 모아서 종합해보니
    시 두편을 지은 사람이 11명, 시 한편을 지은 사람이 15명
    시를 못지은 사람에게는 한사람당 벌주로
    큰 잔으로 3잔씩 마시게 하였다고합니다.

    그러니 시가 총 37편이 모여져서 (11*2+15=37)
    그걸 다 모아서 한권을 책으로 묶게 되는데
    이때 왕 희지선생이 여기다 서(序)를 쓰게 되고

    전문은 모두 28행으로 전체의 글자수는
    324자입니다  이를 '난정서'라고 합니다

     

    획이 날카로운듯 하면서도
    적당한 부드러움과 여유를 가진 듯 하고
    점획 하나 하나도 헛됨이 없습니다.
    공간 배치 또한 기가 막히고,
    같은 글자가 나타나도 모두 모양이 다를만큼
    변화와 생동감이 넘치고 있습니다.

    미인은 박명이라 했듯이...
    이 작품의 팔자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 작품은 왕선생의 7대손인 어느 스님한테 전해오다가
    당시 문화애호가이면서 서예광인 당태종의 끈질긴 추적끝에
    그에 손에 들어갔고  운명시 유언으로 아들에게 난정서를
    함께 묻을 것을 명해 그와 함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역사는 순장(殉葬)이라고 기록했구요.

     

    그러면 저 위의 작품은 수많은 명인들이
    감상했다는 도장을 남겼는데.......
    당태종은 난정서를 얻은 뒤 당대 최고의 서예가 4명한테
    그대로~~~...똑같이....베껴쓰라고 명을 내려
    각각 몇부씩 모사하게했고..그렇게 얻어진 작품들을
    주변 신하들한테 선물로 하사했다고 하는데
    그들 작품들중 하나입니다



    왕희지 부자의 유명한 太자


    윗사진은 그 유명한 왕희지부자의 '太'자입니다.
    왕희지의 7번째 아들인 왕헌지는 어렸을때부터
    총명했으나 놀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대충 글씨 몇자 써놓고
    나가 놀려고 하는 순간 모친한테 들킨
     왕헌지 대충 얼버무릴려고 하죠
    그렇지만 단호한 모친...
    글씨를 하나 써서 가져오라고 합니다.

    방에 들어온 왕헌지...
    큰맘먹고 종이에 '大'를 쓰고 득의양양하는데
    마침 그 옆을 지난던 왕희지
    그 '大'자 밑에 점을 하나 찍곤 밖으로 나가죠.

    '太'자가 되버린 글씨를 모친한테 가져 가고
    이걸 본 모친 왈...
    "이 점 하나만이 좋구나.."...
    아들은 크게 부끄러워 했음은 물론이고요
    그길로 아버지한테 가서

    서예를 잘 할수있는 비법을 물어봅니다.

    그때 왕선생.. 말없이 아들을 데리고 정원으로 나가
    그곳에 있는 18개의 큰 물독을 가르키며 말합니다.

     

    [윗 사진에 보이는 물독 참고..... ]
    "비법은 모두 이 물독안에 있다.
    네가 이 물독안의 물을 다 쓰고 나면
    너는 반드시 비법을 알게 될것이다"
    .....

    나중에 아들 왕헌지는 아버지 왕희지에
    바금가는 대서예가가 됩니다.

     

    蘭亭序

    永和九年, 歲在癸丑, 暮春之初,
    영화 9년 때는 계축년. 음력 3월 초사흘,

    會於會稽山陰之蘭亭, 修禊事也.
    회계산 북쪽 난정에 모여 불계의 예를 행한다.

    群賢畢至, 少長咸集.
    나이를 불문하고 빼어난 인재가 모두 모였다.

    此地有崇山峻嶺, 茂林脩竹,
    고산준령에 울창한 수풀, 쭉 뻗은 대숲이 있는 곳.

    又有淸流激湍, 映帶左右.
    맑은 물 굽이쳐 여울지고
    난정을 휘감아 흐르며 주위를 비추이는 곳.

    引以爲流觴曲水, 列坐其次,
    물길을 끌어들여 술잔 띄워 굽이 흐르게 하고는
    차례로 줄지어 앉았다.

    雖無絲竹管絃之盛, 一觴一詠, 亦足以暢敍幽情.
    음악이 굳이 필요할는지,
    한 잔 술에 한 곡의 읊조림만으로도
    그윽한 회포 펼쳐내기에 족했다.

    是日也, 天朗氣淸,
    이 날, 하늘은 맑고 공기 또한 청명했다.

    惠風和暢, 仰觀宇宙之大,
    따사롭고 시원한 봄바람 속,
    우러러 하늘의 광대함을 바라보고

    俯察品類之盛,
    굽어 만물의 번성함을 살폈다.

    所以遊目騁懷,
    자유로이 눈을 돌리며
    마음가는 대로 생각을 치달리니,

    足以極視聽之娛, 信可樂也.
    보고 듣는 즐거움이 극에 달할 수 있어
    참으로 즐거웠다.

    夫人之相與俯仰一世,
    사람들은 함께 어울려 평생을 살아가는데,

    或取諸懷抱, 悟言一室之內,
    어떤 이는 한 방에 마주앉아
    마음 속에 든 것을 꺼내어 얘기하고,

    或因寄所託, 放浪形骸之外.
    어떤 이는 대상물을 통로 삼아
    육체를 떠나 자유로이 유랑한다
    .

    雖趣舍萬殊, 靜躁不同,
    비록 취사선택의 방식이 다 다르고
    행동거지가 서로 같지 않지만,

    當其欣於所遇, 蹔得於己,
    좋아하는 것을 만나 잠시라도
    마음이 흡족하게 되면

    快然自得, 曾不知老之將至.
    득의양양해져
    곧 늙게 되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及其所之旣倦, 情隨事遷, 感慨係之矣.
    그러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싫증나게 되면 마음도

    감회가 일어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진다
    .

    況脩短隨化, 終期於盡.
    더군다나 목숨이란 것이

    자연의 섭리를 좇아
    언젠가는 다하기 마련인 것 임에랴!

    古人云, "死生亦大矣." 豈不痛哉.
    옛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매우 큰 일이다"고 하였으니,

    이 어찌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每覽昔人興感之由,
    매번 옛 사람들이 감회를 일으키게 된
    단서를 살펴보았는데,

    若合一契, 未嘗不臨文嗟悼.
    그것은 마치 두 개의 정표를
    하나로 맞춘 듯 다 똑같았다.

    不能諭之於懷,
    하여 고인의 글을 대할 때마다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마음으로 왜 그런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固知一死生爲虛誕,
    결국 죽음과 삶은 하나라는 소리가
    허황한 것임을,

    齊彭殤爲妄作.
    팽조처럼 장수하는 것과 어려 죽는 것이

    마찬가지라는 소리라
    망령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後之視今, 亦猶今之視昔,
    후세 사람들이 지금을 보는 것은
    또한 지금 사람들이 과거를 봄과 같을 터이니,

    悲夫.
    슬프도다!

    故列敍時人, 錄其所述,
    그래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을
    순서대로 적고 그들의 시편을 수록하였다.

    雖世殊事異,
    비록 세상이 달라지고 사정이 변하겠지만,

    所以興懷, 其致一也,
    감회를 일으키게 되는 이치는 한결같을 것이니,

    後之覽者, 蘭亭集序 亦將有感於斯文.
    훗날 이 글을 보는 자도
    또한 이 문장에서 감회를 느끼게 될 것이다

    사물 따라 변하고 감개가 이어 나온다.

    向之所欣, ,俛仰之間 以爲陳迹, 尤不能不以之興懷,
    이전의 즐거웠던 일이 순식간에 진부해지니


    중국 진서(晋書) 왕희지전(傳)은 왕희지 글씨에 대해
    이렇게 썼다. "떨어지는 이슬을 구름이 이어주듯
    끊어질까 싶으면 이어지고, 봉황의 날갯짓에
    용이 휘감기는 모습 같구나."
    그러나 지금 지구상엔 왕희지가 직접 쓴 글씨가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당 태종이 죽으면서 갖고 있던 왕희지 글씨
    2300점도 모두 땅속에 함께 묻었다고 전해 온다.
    후학들은 누군가 왕희지 진본(眞本)을 보고 베껴 쓴
    모본(模本)을 왕희지 글씨로 알고 배우고
    또 베껴 쓰며 서예의 전통을 이어 왔다.

     
    인각사 일연선사비


    일본에서 왕희지 글씨 모본 서첩(書帖)이 새로 발견됐다.
    당나라 때 중국에 갔던 일본 사신이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가로 10.1㎝, 세로 25.7㎝ 종이에 '大報期轉呈也(대보기전정야)'를
    비롯한 스물네 글자가 쓰여 있다. 일본 전문가들은
    "이처럼 시기가 이르고 상태가 좋은 왕희지 모본은
    세계에 열 점밖에 남아 있지 않다"며
    '세기의 발견'이라고 흥분하고 있다.

     


    새로복원된 일연선사비

    우리나라에선 경북 군위 인각사에 있던 일연선사비(碑)가
    왕희지 글씨들을 모아 세운 것이다. 왕희지 글씨를
    4000자나 집자(集字)한 예는 중국에도 없다.
    조선에 왔던 중국 사신들은 이 비문을 탁본 떠 가져가는 것이
    최고의 귀국 선물이었다고 한다. 탁본 작업이
    너무 잦다 보니 글자가 뭉개지고 비석에 흠집이 나
    2006년 일연스님 탄생 800년을 맞아 복원했다.
    일본서 발견된 한 장의 종이가 사라져가는
    한·중·일 붓 문화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대금 명상-월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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