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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좋은 형제 이조년(李兆年)
    Good writing 2012. 8. 22. 11:48

    의좋은 형제 이조년(李兆年)

    고려 말엽 충혜왕때의 학자이자

    명신인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은 호를

    매운당(梅雲堂)이라 했는데 유명한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의 작가 이기도 하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그에게는 형이 넷이 있었는데 백년, 천년,

    만년, 억년이다. 소년시절 하루는 형 억년

    과 길을 가게 되었다. 지금 서울 근교인

    한강가의 길을 가는데 우연히 길가에서

    금덩이를 주웠고 크게 횡재를 한 형제는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넉넉치 못한 살림이고 식구가 많은 형편인데

    금덩이를 줍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일확천금의

    횡재를 만난것이다. 억년과 조년은 기쁨의 길

    을 재촉하였고 곧 양천나루를 건너게 되었다.

    지금 한강의 하류로 행주산성 못미처이다.

    그 시절은 양천현(서울시 양천구)관활이었다.

    양천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가던

    조년은 문득 금덩이를 강물속으로 던져 버렸다.

    깜작놀란 억년이 물었다."아니 왜 그래? 어떻게

    된거야" "형님! 금덩이를 버리고

    나니 내 마음이편해졌어요."

    "금덩이를 주워 형님과 나눠갖고 난후 줄곧 욕심

    이 솟구쳐 마음이 편하질 못했죠. 형님이 없었더

    라면 금덩이 두개를 몽땅 내가 가질 수 있었는데

    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자꾸 형님이 원망스러웠고

    심지어 형님이 가진 그 금덩어리를

    뺏고 싶은 충동까지 생기더라

    니까요." 우리 형제가 우애 좋기로 동네에 소문이

    나있는데 갑자기 금덩어리로 해서 원수가 될 것

    같으니 옛사람 말이 거짓이 아니더군요."

    "황금을 요물이라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버렸지요.

    버리고 나니 이렇게 마음이 편하답니다." 아우의 말

    을 들은 억년도 나도 맘 속으로 너와 똑 같았다.

    금덩어리로 해서 자칫 우리사이에 금이 갈 뻔 했구나."

    라고 말하고는 금 덩어리를강물속으로 던져 버렸다.

    후에 사람들은 이 양천나루를 투금탄(投金灘)이라 했다.

    금덩이를 던진 여울이란 뜻이다. 뒷날 조년은 성산군(星

    山君)에 봉해질 정도로 크게 현달하였고 형님 네분도

    높은 벼슬에 올라 국가 발전을 위해 많은일을 했다.


    가곡 김혁남 - 아 가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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