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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열 살 어린이의 효심Good writing 2011. 10. 31. 13:45
열 살 어린이의 효심
아버지는 영영 깨어나지 않을 것인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버지를 부둥켜 안고 목이 터져라 부르지만 쓰러진 아버지는 끝내 귀를 열지 않는다. 누구 없어요? 살려 주세요! 아무리 소리쳐도 빈 메아리만 되돌아온다. 재수는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덮어준다. 섣달 그믐의 강추위가 뼛속을 훑고 지나간다. 아버지, 아버지.....
눈보라 치는 컴컴한 고갯마루, 재수의 절규만이 하늘을 찢는다. 이젠 눈물마저 얼어붙었다. 재수는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포개 아버지를 안는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1974년 1월 22일, 설을 하루 앞둔 그믐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되던 눈보라는 그칠 줄 모르고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가 연일 계속되었다. 형님댁으로 설을 쇠러 가겠다는 남편을 말리지 못하고 아들과 함께 떠나 보냈지만 여인의 마음은 안절부절이다. 설핏 잠이 들었을까.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른다.
“아지매, 아지매!”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려준다.
“아재랑 순둥이가.....”
철커덕, 하늘 문이 닫힌다.
30리를 달려 남편과 아들에게 온 여인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병원으로 옮겼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남편과 아들은 이미 숨이 멎어 가마니 거적 아래 누워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재수와 아버지는 충북 보은에 있는 고향집으로 설을 쇠러 가던 중이었다. 손에는 닭 한 마리와 사촌들에게 줄 사탕봉지가 들려 있었다. 상주군 회북면에서 옥천군 청산면을 가자면 보은군 마로면을 거쳐서 효자고개를 넘어야 했다.
정재수 부자는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험한 산길을 혹독한 강추위와 싸워 가며 걷고 있었다. 이윽고 화북면을 거쳐서 마로면에 왔을 때 눈보라는 더욱 기승을 부려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이들은 잠시 쉬어 가기 위해 어느 술집에 들른다. 그곳에서 재수의 아버지는 몇 잔의 술을 마셨고,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길을 나선다.
혹한과 눈보라를 뚫고 청산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내딛지만 아버지는 쏟아지는 잠을 견디지 못해 자꾸만 쓰러졌다. 아들은 아버지가 얼어 죽을까봐 갖은 애를 썼다. 하지만 어린 아들의 처절한 몸부림에도 아랑곳 없이 이들 부자는 비참한 모습으로 동사하고 만다.
며칠 후 신문과 방송에는 재수의 이름 석자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에 대한 효행을 기려 아이가 다니던 학교와 서울 어린이대공원에는 효자탑이 세워졌다.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는 ‘갸륵한 꽃 한송이’라는 제목으로 그날의 사연이 실렸고, 어떤 사람은 그 이야기를 영화로도 만들었다.
'효'도 구시대의 유물이 된 것일까. 재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잊혀져 갔다. 그를 기억하는 건 함께 살았던 마을 사람들과 아들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 뿐. 어느 때부터인가 교과서에서도 그의 흔적은 사라졌다.
재수는 순둥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여리고 어른스러웠다. 학교에 다녀오면 소를 끌고 야산으로 가 꼴을 먹이고, 재 너머 밭까지 따라 나와 김을 맸다. 다 떨어진 고무신을 신고도 불평 한 마디 없던 착한 아들. 어머니는 아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계란푸라이를 매일 싸주지 못한 게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그녀는 나머지 4남매와 함께 이를 악물고 살았다. 농사도 짓고, 탄광촌에서 밥집도 하고, 리어카에서 과일을 팔며 생계를 이었다. 먹고 사느라 바쁘면 그만큼 슬픔도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때 뿐이었다. 지금도 눈
오는 날이면 어머니의 슬픔은 악몽으로 바뀐다. 지난해 겨울 불어닥친 혹한과 폭설은 어머니로 하여금 오랫동안 자리에 앓아눕게 했다.
재수의 무덤은 그가 숨졌던 고갯마루에 있다. 그 앞에 무심히 서 있는 비석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서기 1974년 1월 22일 밤, 정재수 이곳에 잠들었으며 이는 경상북도 상주군 화북면 소곡리에 태어났다. 십 세의 어린 나이로 혹한의 눈보라 속에 쓰러진 아버지를 구출하고자 못다 핀 생명을 바쳤으니 아! 아버지의 영혼을 덮어주던 그 맑은 효행은 뭇 사람의 심금을 울려 길이 후세에 흐르라』
상주시에서는 재수의 효심을 기려 정재수기념관을 세웠다. 돈을 주지 않는다며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늙은 부모를 해외에 데리고 나가 버리고 오는 삭막한 세상, 재수가 살았던 상주에서만이라도 효의 아름다운 정신을 이어가자며 뜻을 모은 것이다.
기념관은 충북-경북 도계로부터 승용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사산초등학교(상주군 화서면) 터에 아담하게 세워졌다. 이곳은 정재수가 다녔던 학교로 6년 전에 폐교된 학교 건물을 개축한 것이다.
효자 정재수 동상 비문에는
‘그의 뺨에 얼어붙은 눈물을 내려다보며 울은 것은 새파랗게 질린, 겨울 하늘의 별뿐이었습니다’
라고 씌여 있어 찾는 이들을 더욱 숙연하게 만들고 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메모 :'Good writ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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