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스크랩] 노자와 기독교 - 处无为之事,行不言之教 (유소충)
    IMMANUEL 2011. 7. 7. 12:07

    노자와 기독교 - 处无为之事,行不言之教  

     

     

    <本经>


    天下皆知美之为美,斯恶已; 皆知善之为善,斯不善已。故有无相生,难易相成,长短相形,高下相倾,音声相和,前后相随。是以圣人处无为之事,行不言之教,万物作焉而不辞。生而不有,为而不恃,功成而不居。夫唯不居,是以不去。 

    <韓文>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형,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부유불거, 시이불거.

     

     <語譯>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것이 바로 아름다운(美) 것이다’라고 여길 때에 거기에 추악(醜惡)함이 나타나게 되고, ‘이것이 바로 선(善)이다’라고 생각 할 때에 거기에 불선(不善)이 자리잡게 된다. 그러므로 있음(有)과 없음(無)은 상호(相互) 생성(生成)되며 어려움(難)과 쉬움(易)이 바꾸어 가며 이루고, 길고(長) 짧은 것(短)이 서로 오고 가며, 높음(高)과 낮음(下)이 서로 번갈아 나타나며, 소리(音聲)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앞(前)에 가는 자와 뒤(後)에 오는 자가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성인은 무위(無爲)의 태도(態度)로 사물을 대하며 무언(不言)의 교화(敎化)를 실행한다. 자연은 만물의 생성을 거절하지 않고, 생겨난 만물을 자기의 소유로 삼지 않으며, 어떤 일을 하여도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으며, 성과(功)를 이룬(成) 후에도 자기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는다(不居). 그러므로 그의 공적은 영원히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이다.

    <解說>


    본장에서 노자는 도(道) 자체는 아름답거나 추함이 있을 수 없고, 선과 악으로 구분 할 수 없는 절대성(絶對性)을 가진 진선미(眞善美)의 극치(極致)임을 강조한다. 이 도를 따르는 성인(聖人)은 시비(是非)와 선악(善惡)을 구분할 때는 언제나 상대적 논리의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심태(心態)를 가지고 자신의 판단이나 가치관을 절대화 시키지 말 것을 일러준다. 


    유(有)가 없으면 무(無)는 생겨날 수 없고, 어려운 것(難)이 없으면 쉬운 것(易)도 있을 수 없고, 긴것(長)이 있음으로 짧은것(短)이 드러나게 되는 법이고, 높음(高)이 있기에 낮음(下)도 보이게 되는 것이요, 높은 음이 있으면 낮은 음도 있고, 앞(前)이 있으면 뒤(後)도 생기게 되는 것이로되, 이 상대적 논리 앞에 인간은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휩쓸리는 일이 없도록 모든 처사에 도(道)에 귀의(歸依)하여 자연의 이치에 순응(順應)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언제나 그 처사에 있어서 꾸밈이 없고, 허위 허식이 없는 무위(無爲)의 자리를 지키며 무언(無言)의 교화(敎化)를 실천할 것을 노자는 훈언(訓言) 한다.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무위(無爲)는 곧 유위(有爲)이다’라는 역설(逆說)적 논리로 도(道)를 터득한 자가 사람의 궤계나 인위적 수단 방법으로 사물을 대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인간의 참다운 행실이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무위(無爲)는 처사자(處事者)의 아름다운 심상(心相)과 동기(動機)요, 유위(有爲)는 그 심상(心相)과 동기(動機)에서 나오는 현상(現象)과 결과(結果)이다. 무위(無爲)란 행동적 차원라기 보다 사상적 차원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유위(有爲)는 긍정적 의미 보다 부정적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聖經)으로 본 노자(老子)>


    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处无为之事,行不言之教)의 가르침은 성경의 거듭 된 교훈이요, 영적 진리이다.

     

    1. 구원은 철저한 무위(無爲)의 결과이다.


       ㆍ구원은 우리의 행위를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롬3:27). 


       ㆍ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구속으로 밀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4). 

    2. 헌신은 무위(無爲)의 행동 이어야 한다.


       ㆍ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ㆍ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3. 신앙생활은 무위(無爲)의 삶이다.


       ㆍ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11:3-4). 


       ㆍ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년 후였더라(창16:1-3).


       ㆍ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창16:15).
       ㆍ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32:25-28). 


        ㆍ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출32:8).


        ㆍ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마6:3).


        ㆍ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마17:4-5) 


        ㆍ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26:51-52).


        ㆍ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시147:10).


    우리는 신앙의 여정에 항상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내 행동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지(마3:17), 성령께서 탄식하고 계시지는 않은지(롬8:26),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지 물으면서 살아야 한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치 않는 일은 곧 바벨탑이요, 이스마엘이요, 전적투항(全的投降) 이전의 야곱이요, 육에 속한 베드로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그러나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15:5하). 내가 함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하신 것이다. 무슨 일을 해도 그 대가를 바라지 아니하고 어떤 일을 완성하였어도 그 성과에 집착하지 말아야한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존경을 받으려 하거나 영광을 누리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일은 하되 주님을 앞세워서 하고 일을 마치고 나면 주님의 손을 의식하고 나의 손은 감추어야한다. 아니 감출 필요도 없다. 본래 내 손은 없었으니 말이다. 이것이 곧 처무위지사(处无为之事)이다. 모든 영광은 주님께 돌려야한다(고전10:31). 이것이 공을 이룬 후 스스로 뒤로 물러나는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의 성숙함이다. 우리는 지독한 아상(我相)으로부터 탈피를 해야한다. 주님보다 앞서거나 주님밖에서 하는 일은 모두 인위(人爲)적이요,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가 아닌 유위(有爲)에 해당한다.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바로 비아(非我) 이다. 그렇게 될 때에 진정한 내가 탄생하게 된다. 우리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그보다 말 없이 몸소 실천하여 모범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이 저절로 교화 될 것이다(行不言之教). (고전13:1) 


    이런 신앙의 정상(頂上)으로 우리 모두가 등정(登頂)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노자의 두 번째 이야기를 마친다. 


    유소충│영등포중화교회 담임ㆍ세계선교신학원 교수ㆍ중국선교연구원장

     

    http://www.chinatogod.com/main/ctg_view.php?no=1657&page=1&div=4&ctg3=26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