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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옛그림 감상법(1)-옛그림 읽기
    CALLIGRAPHY,ORIENTAL 2009. 7. 12. 12:34

    어떤 미술품이던 감상할때 미술품 대각선 길이의 1배 내지는 1.5배 정도의 거리에서 보아야 제 멋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화가가 그림을 그릴때 그 정도 거리의 관람자가 볼거라 생각하고 그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작은 그림은 앞으로 가까이 가서 큰 그림은 뒤에서 대각선의 약 1.5배 거리에서 천천히 보는것이 제일 좋은 거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옛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옛사람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옛사람의 눈으로 본다는것이 무슨 뜻일까요? 

    옛그림 감상법에 제가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생각하는 오주석 교수님의 "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이란 책중 옛그림 읽기 부분을 소개 할까 합니다.

     

    오주석 교수님은 2월에 타계 하셨습니다. 평소 우리 문화재, 특히 옛그림을 너무나 사랑하셨던 당신이였기에 일면식도 없는 저 또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하늘에서도 우리 국민들이 우리 문화재를 보면서 많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랄것입니다. 비록 타계를 하셨지만 올 해 말쯤 미리 써놓으신 원고 "옛그림 일기의 즐거움 2 " 가 출판 예정이기에 글로 다시 뵈울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옛그림 읽기  --  오주석            

     

     

    옛사람들은 그림 감상을 일러 '간화(看畵)', 즉 '그림을 본다'는 말보다 '독화(讀畵)', 곧 '그림을 읽는다'는 말 쓰기를 더 좋아하였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받아 본 제자 이상적이 스승께 올리는 편지에서 "<세한도> 한 폭을 엎드려 '읽음'에,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歲寒圖一幀 伏而讀之 不覺涕淚交 )" 하고 쓴 것도 그 일례다.(이글의 카테고리를 보세요..저도 읽기라고 썼습니다  ㅎㅎ)

     

    그림을 '읽는' 것과 '보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우선 '본다'는 것은 겉에 드러난 조형미를 감상한다는 뜻이 강한 데 비하여, '읽는다'는 말은 동양의 오랜 서화일률(書畵一律)의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글씨와 그림이 한가락이므로 보는 방법도 한가지로 '읽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림에서 읽히는 내용 또한 형상보다는 그린 이의 마음이 주가 되니 문인화(文人畵)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옛 그림 가운데서도 화첩(畵帖)은 형태가 서양화와 비슷하다. 그런데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면 화면을 세로 접어 책처럼 간수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그림 한복판에 세로 접힌 금이 생기는데 화면에 보이는 이런 자국은 현대인들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훌륭한 작품의 한중간을 왜 꺾고 접어서 갈무리하였을까? 옛 그림은 '보기' 위한 것이기보다 '읽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서양식 가로쓰기 방식으로 글을 쓰고 읽는다. 이 때 시선(視線)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진행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음악을 기록한 오선지(五線紙) 악보 역시 같은 방식으로 적고 읽는다. 그러므로 그림 보는 사람의 잠재적 시선은 먼저 좌상(左上)으로 갔다가 대각선을 따라 우하(右下)로 흘러내린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시선이 닿는 곳은 왼편 상단이다. 그 다음은 알파벳 X 자를 쓰듯이 왼쪽 획의 흐름을 따라서 보고 이어서 오른 획의 방향을 따라 보는 것이다.

     

    옛 그림은 이와 달리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눈길을 옮겨 감상하도록 되어 있다. 즉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이어지는 대각선의 흐름을 따라 보는 것이다. 조상들은 한문이건 한글이건 그렇게 쓰고 읽었으며, 옛 악보(樂譜)인 정간보(井間譜) 역시 이 같은 방식으로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옛 그림에서 중요한 자리는 오른쪽 상단이고, 왼쪽 하단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우상(右上)에 제목을 적고 좌하(左下)에 작가의 관지(款識)를 넣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 옛 그림을 서양 사람 습관에 따라 X자 모양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서양 그림은 그렇게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우리 옛 그림을 그렇게 보는 것은, X자에 '아니다'라는 뜻이 있는 것처럼 '그릇된' 감상법이다. 우리 그림은 모름지기 한자 '풀 벨 예(乂)' 자의 획순처럼, 먼저 삐침(약掠)을 따라서 보고, 이어 파임(책 )을 좇아가듯이 감상해야 한다. 예(乂) 자는 '다스린다', '조리가 있다'는 뜻으로도 새겨진다. {상서(尙書)} [홍범(洪範)] 편에는 '종작예(從作乂)', 즉 '이치를 따르니 조리가 있다'는 글귀가 있다. 이 말이 바로 우리 옛 그림을 보는 '옳은' 방법을 시사한다고 생각하면 편리할 것이다.

     

    애초 옛 그림의 표구 형식부터가 족자(簇子)나 병풍차(屛風次)처럼 내리닫이가 많은 이유는 모두 글쓰는 방식을 따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어느 글을 보니 사람의 눈이 가로로 길게 생겼으므로 서양식 가로쓰기가 전통적인 세로쓰기보다 더 과학적인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 필자는 글 읽을 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옛글과 옛 그림은 원래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이며 보는 것으로, 그것은 풍류도 있어 보이려니와 건강에도 좋다. 오히려 좌우로 눈동자를 굴리거나 고개를 도리질하는 것이 더 체신없어 보이지 않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우에서 좌로, 위에서 아래로가 원칙이였다.
     
     

     

    이상 붓글씨 하는 분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글쓴이가 굳이 길게 설명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연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9m에 이르는 이인문(李寅文)의 걸작 두루마리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전체를 다 펴 보인 적이 있었다. 이 때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구경을 하는데 한결같이 왼쪽 끝을 향하는 것이었다.

    작품을 꽁무니부터 거슬러가며 보는 격이라 한편으로 어이가 없으면서 한편으로는 딱했다. 그러나 잘못은 어린 학생쪽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글쓴이가 작품 위에 써서 걸어 놓았던 해설판이 가로쓰기였기 때문이다.

     

    동서양에 따른 감상 요령의 차이는 다방면으로 확대돼서 아주 큰 문제가 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奎章閣)에 걸려 있는 현판은 조선왕조 숙종(肅宗) 임금이 쓴 글씨다. 그런데 원래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 것을 요즘 사람들 읽기 좋으라고 좌에서 우로 순서를 바꾸었다. 때문에 글자 획간(劃間)의 균형이 무너져 버려 어색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 고서화(古書畵) 전시 도록을 보면 대부분 표지가 왼편인 서양식 좌철책(左綴冊)이다. 모두 꽁무니부터 작품을 보게끔 한 것이다.

     

    옛 그림 전시장엘 가 보아도 사정은 같다. 많은 경우 입구에서 왼편으로 돌게끔 동선(動線)을 설정해서 작품을 거슬러 보게 한다. 글쓴이처럼 굳이 오른편부터 보겠다고 고집을 피다가는 동선을 따르는 많은 서양식 관람자들과 머리를 부딪히게 된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교양 없고 무지한 사람이 되어 눈흘김을 받은 적도 여러 번 있다. 하지만 전시된 작품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모처럼 TV에서 옛 그림을 방영하고 해설하는 걸 보면 카메라 앵글은 그림의 세부를 영락없이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훑어 간다. 이 경우 작품 감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작품을 '읽는' 동서양의 방식 차이는 아주 작은 듯하나,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는 이처럼 예상 밖으로 엄청나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 옛 그림은 애초 가로쓰기 식으로 보면 그림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그것은 옛 화가들에게 세로로 읽고 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보는 이도 당연히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 쪽으로 감상해 나갈 것이라 생각하면서 구도(構圖)를 잡고 세부(細部)를 조정하고 또 필획(筆劃)의 강약까지도 조절했기 때문이다.

     

     


    출처 : 우회전금지
    글쓴이 : 시대청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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