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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후세인 오바마Politics·Socite 2012. 11. 15. 13:43
버락 후세인 오바마!!
1961년 8월 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사는케냐 출신의 흑인과 결혼해 아들을 낳는다.규정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하지만 아이가 두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홀로 고향인케냐로 돌아가 버리자
남겨진 아이는 동네에서 아버지 없는혼혈아로 자라게 되었다.
그 후 어머니는 혼자서 아이를 키우다가 아이가 6살 되던 해에그 지역에 유학 온 인도네시아 남성과 재혼을 하고
온 가족이 함께 인도네시아 카르타로자
이민을 가게 된다.비록 멀리 외국에서 살게 되었지만 어머니는 아이가
모국어를 잃어버릴까봐 일을 나가기 전 새벽 4시에
잠자는 아이를 깨워 영어를 가르쳤다.
언젠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주류사회에서낙오하지 않으려면 오로지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많은 책을 읽게 하는 등 아이교육에 대한
그녀의 의지는 무척 강했다.
그리고 훗날 아이는 자신의 힘 8활은아이가 10세가 되었을 때 어머니의 재혼마저 파경을 맞자아이는 다시 하와이로 돌아온다 그는 어머니와 떨어져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지나게 되는데 외조부모 역시
어떻게든 손자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옷을 살돈까지아껴가며 아이의 고육에 힘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조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아이는점점 비뚤어져 갔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인종문제로
갈등을 겪게 되자 술 담배 마리화나 등에 손을 댔다.
잡아준
이는 외할머니였고 그는 피부색이 아닌 인간 자체로평가 받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당시 미국의 총인구 중 흑인은 13%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흑인들의 목소리는
그만큼 작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는 언제까지
불이익을 당하고 살수만은 없다고생각하며 정치가의 꿈을 키웠고 47세가 되자
대통령선거에 출사표를 던진다.
뿌리 깊게 내려진 미국인들의 흑인에 대한 편견을 바꾼다는 것이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지금 미국인들에게 흑인지도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다면 분명 다음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며 사람들의 선입견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이후 232년 만에 첫 흑인 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재선에 성공하며 미국 현대사를 다시 썼다.역사상 최초의 미국 흑인 대통령이된 그는 이번 대선에서
‘앞으로(Forward)’를 외치며 ‘재선 흑인 대통령’이라는
또 하나의 신화를 창조했다.기회가 왔는데도 뒤뜰에 나가 네 잎 클로버만 찼을 것인가.“행운은 네 잎 클로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베토벤 운명교향곡 제 1악장: Allegro con brio C단조'Politics·Soci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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